VITALE BARBERIS CANONICO | rihotailor

VITALE BARBERIS CANONICO

19세기 중반 주세페 바르베리스 까노니꼬(Giuseppe Barberis Canonico)가 산업 혁명의 물결에서 이미 기계화된 회사인 마우리 지오 셀라(Maurizio Sella)와 협력하여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 주세페(Giuseppe)는 사용 중인 기계를 더욱더 늘리는 목표를 세웠고, 플레 치아(Flecchia)의 양모 공장을 임대함으로써 18세기 말에 800개의 스핀들과 73개의 직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최초의 기계 직기의 등장으로 1868년부터 프라트리베로(Pratrivero)에서 공장을 전개하는데, 이곳에서 직조, 염색 그리고 압축 및 회전 작업등이 시작되었습니다. 1890년에서 1906년 사이에 공장은 직조를 자동화하고 직물˙기계˙자동차 등의 공업이 발달한 독일 작센주(Saxony)에 위치한 도시인 켐니츠(Chemnit)에서 최고의 직기를 사기 시작합니다.

20세기는 또한 새로운 귀중한 자원인 전기를 가져 옴으로써 주세페 바르베리스 까노니꼬(Giuseppe Barberis Canonico)는 1910 년 프라트리베로(Pratrivero)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V.B.C는  성장세를 이어가 트렌토(Trento) 지방에 2개의 새로운 공장을 오픈했으며, 고품질에 높은 퀄리티의 직물 생산 덕분에 유럽뿐만 아닌 미국, 영국, 동인도, 심지어 먼 국가인 중국에까지 수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치솟는 성장세도 잠시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파시즘(Fascism) 즉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이라는 역사적 시기를 맞아 세계 경제 위기로 시장이 흔들리고, 양모 생산자들의 기업가 적 자유를 제한하는 등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36년 비테일 바르베리스 까노니꼬®(Vitale Barberis Canonico®)가 탄생합니다. 바르베리스 까노니꼬(Vitale Barberis Canonico)는 자신들의 350년의 긴 역사와 전통 속에서 우수성과, 미래적 영감을 받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최상의 품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